AI 시대를 마주하며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나의 이야기

알파고 이후의 시대

러다이트 운동

온라인의 IT 이슈가 GPT로 모이고 있다. Youtube 첫 페이지에도 도배되고, 커뮤니티를 보아도 글이 왕창 쏟아진다. 브런치에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아마 한바탕 쓸고 지나갔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GPT의 전망과 미래에 대해에 대해 부족한 생각을 정리해 글을 써도 허공에 외침 같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데, 감히 분석해 보았자 소용없으리라. 접고, 저번 글에 이어 나의 "살아남기 위한 아등바등 거리는 이야기"를 쓰려한다. 나에게는 이게 맞다.

"개발언어와 도구를 사용하는 생산 전문가"

나는 스스로를 개발자보다는 "개발언어와 도구를 사용하는 생산 전문가"에 가깝다 생각한다. 프로그래밍에 대한 학문적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나는 태생이 순수 문과 비전공이다), 단지 남들보다 빨리 컴퓨터로 뭔가 투닥거리면서 만드는 게 좋아서 자주 쓰다 보니"도구로 뭔가 만드는 일"을 돈 받고 업으로 할 만큼 경험이 쌓였다 생각한다. 나는 프레임워크의 코어 구조에 대해 이해하거나 멋진 알고리즘으로 훌륭하게 돌아가는 구현체를 만드는 게 아니라 "로그인 기능", "커뮤니티", "웹 사이트", "온라인 결제"를 훌륭하신 분들이 만든 라이브러리나 프레임워크를 사용해서 상품으로 만드는 일을 하는 "기술 유저"에 가깝다. 그래서 개발자라는 단어가 좋다. 나의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의 부재를 "만드는 사람"이란 뜻으로 포장할 수 있어서.

알파고가 나오고 내심 오싹했다. 진짜 나 같은 개발자는 직업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머릿속에 러다이트 운동이 스쳐 지나갔다. 내 앞에 불쌍한 정든 노트북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알파고가 나온 뒤에도 한참 동안 AI는 먼 곳에 있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번 더 뒤집혔다. Chat GPT 전에 Copilot이라는 친구가 나왔을 때이다.

이 친구는 자동완성을 해 주는 친구이다. 내가 특정 주석이나 코드를 치면 자동으로 뒷부분을 완성해 준다. 직접 사용해 보고 나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간단한 구현체 정도는 주석만 달아도 A4용지로 인쇄하면 한 장은 족히 나올 양의 코드를 자동완성 해 줬다.

... 와 이번에는 정말 큰일인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년 치 서비스를 100불 내고 결제했다.

나는 이 친구를 잘 활용해서 매일 작업 능률을 올리고 있다. 가끔 바보 같은 답변이 나와 화날 때도 있지만 지시한 대로 수행하는 걸 보면 아주 훌륭한 조수를 둔 기분이다. 간단한 예제 정도는 코드를 분석하고 자동완성 해 준다. 남에게 설명하기 위해 내가 예제를 만들 필요가 사라졌다.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을 때 공포였고, 직업을 잃는 사람이 나오고, 아주 큰 변혁이 일어났지만 아마도 그 기계가 대체하게 될 때 대체되는 영역을 잘 이해하고 그 영역을 기계가 대체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간 선구자(이자 배신자? 변절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았을 것이다.

GPT가 나왔다. 이번에도 Pro를 결제했다. 시즌 N 번째 "와 이번에는 정말 큰일인데?"를 또 외쳤다. 이미 맛을 한번 보았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제 조수가 둘이 되었다. 지금도 여러 연구소나 실무 영역에 이런 방식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하는데 머뭇 거릴 시간이 없었다. 나는 "기술 유저"니까. 도구는 잘 쓰면 쓸수록, 먼저 빠르게 적응할수록 조금이라도 빨리 장인이 되니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미 알게 모르게 앞자리에서도, 옆 자리에서도 브라우저에 GPT가 떠 있다. 서로 눈치는 보고 있지만, 능률이 오르는 건 사실이다. 산업화 시대에 기계를 마주하고 "공포가 기회로 보였던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이 되는 게 지금 시장에서 나의 생존 전략이다. 눈치 볼 필요 없다. 내가 잘 쓰는 사람이 되면 되니까.

몇 달 만에 내 태도도 바뀌었다. 개발자에게 주요 스택을 변경하는 건 굉장히 망설여지는 일이다. 가령, 중식 요리사가 가끔 한식을 할 수는 있겠지만, 간판을 한식집으로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요즘은 그런 용기가 날 지경이다. "모던 프론트 엔드 라이브러리"로 Vue.js를 몇 년간 써 왔는데, 요 몇 달 사이에 "React, Next.js"로 변경해 버렸다. 기본적인 프레임워크들 생태는 서로 비슷하니까 공식 문서 좀 공부하고 바로 GPT 켜고 실무에서 사용하는 주요 기능들을 컨버팅 해서 적용하기 시작했다. 공포가 기회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보편적인 기술들에서는 더욱더 유효하게 작용했다. 무중단 배포를 할까 말까 몇 주 고민했는데, GPT에 질문 던지고 하루 이틀 만에 환경에 적절한 방법을 찾아 도입에 성공했다. "Queue에 10개 node를 만들어서 1000개의 요청을 랜덤 한 간격으로 보낼 수 있는 특정 언어 구현체를 만들어 줘"라는 질문 하나만 던져도 적당히 고쳐서 쓰면 동작하는 스트레스 테스트 도구가 완성된다.

처음에는 "치트키" 쓰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이 바뀌었다. 빠르게 만들고 남은 시간에 더 많이 새로운 걸 배울 수 있게 되고, 고민만 하던 기술들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GPT의 등장으로 어떤 미래가 올 지 질문을 던진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IT업계 종사자로서 이 기술을 빠르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유저"가 되어야 산업혁명 시대의 생존자처럼 흐름에 올라탈 수 있다는 건 확실하단 생각이다.

당장 정리하고 있는 프로필 사이트 초안에 "GPT"와 "Copilot"을 적었다.

생존은 경쟁이니까.